누군가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나에게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6장. ambition, self-improvement, 그리고 현재를 미래의 나를 위한 재료로만 만드는 위험에 관한 장.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날의 나에게
야망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
Ambition은 우리를 관성에서 끌어내고, 어려운 기술을 배우게 하고, 불확실한 일을 시도하게 하고, 출발점을 넘어 이전에는 상상만 하던 것을 만들게 한다.
이 장은 야망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 야망이 삶을 확장하는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부족하다고 계속 증명하는지 묻는다.
야망은 사람을 넓힐 때 가장 아름답다. 현재의 나를 부끄러운 초안으로 만들 때가 아니다.
현재가 미래를 위한 도구만 될 때
오늘의 모든 것이 내일로 이어지기 때문에만 가치 있는 삶이 있다. 일자리를 위해 공부하고, 직함을 위해 일하고, 지위를 위해 직함을 얻고, 더 많은 선택을 위해 지위를 얻는다.
그 흐름은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방치하면 현재는 원재료가 된다. 하루는 투자, 관계는 network, 경험은 디딤돌이 된다.
미래는 만들 가치가 있지만, 현재가 오직 미래의 재료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버전의 나’도 감옥이 될 수 있다
Self-improvement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다. 더 배우고, 건강해지고, 일을 잘하고, 더 친절해지는 것. 그러나 better version에 끝이 없다면 숨은 메시지는 늘 같다. 지금의 나는 아직 부족하다.
발전에는 자연스러운 종착점이 없다. 언제나 더 빠르고, 규율 있고, 능력 있고, 성공한 사람이 있다. 자기 가치를 최적화된 나와의 거리로 측정하면 우리는 영원히 부족하다.
성장은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경멸하는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Becoming과 Being 모두 삶에 자리가 필요하다
Becoming은 앞을 향한다. 배우고, 만들고, 시도하고, 바꾸고, 더 유능해진다. Being은 지금 존재하도록 허락한다. 식사를 optimize하지 않고, 대화를 networking으로 만들지 않고, 휴식을 productivity 전략으로 바꾸지 않는다.
Being만 있으면 방향이 부족할 수 있다. Becoming만 있으면 도착할 권리를 영원히 얻지 못한다.
우리는 향할 미래도 필요하고, 미래의 허락 없이 의미를 가질 현재도 필요하다.
진짜 원하는 목표와 ‘나 같은 사람이라면 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표가 있다
직함, 수입, 회사, 도시, lifestyle, 성공 이미지가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 매력적인가? 나에게, 아니면 유능한 사람은 이것을 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대본에게?
사회 영향을 받은 목표가 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고, 칭찬하고, 알지 않아도 여전히 원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
따라갈 가치가 있는 목표에는 관객이 없어도 남아 있는 이유가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
Comparison은 야망을 내 트랙이 없는 경기로 바꿀 수 있다
비교는 유용한 정보를 준다. 가능성, 새로운 기준, 아직 없는 기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finish line을 빌려 그것을 내 미래라 부르면 위험하다.
다른 사람은 출발점, 가치, 책임, 감수할 비용이 다르다. 맥락 없이 속도만 보면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경기를 사는 기분이 된다.
다른 사람의 지도로 내 길에서 느리다고 결론내리지 말자.
지속 가능한 야망에는 현재의 닻이 필요하다
야망 있는 사람이 늘 불만족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자리를 소중히 여긴다’와 ‘더 멀리 가고 싶다’를 동시에 말할 수 있다.
자기 가치가 다음 성취에 전부 달려 있지 않다면 야망은 덜 불안하고, 덜 증명하려 하고, 더 오래 갈 수 있다.
더 많이 원해도 된다. 지금 가진 것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나에게
네가 애쓰고 있다는 걸 안다. 더 멀리 가고, 더 많이 해내고, 과거의 내가 존경했을 사람으로 되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을 빼앗고 싶지는 않다.
다만 becoming 중에 현재의 나를 지워야 할 버전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배우는 사람, 느린 사람, 아직 모르는 사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도 의미 있는 하루를 살 권리가 있다.
야망을 버리지 말자. 그러나 미래가 현재의 존재할 권리까지 가져가게 하지는 말자. better version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곳을 계속 미워하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야망을 버리지 말자. 그러나 미래가 현재의 존재할 권리까지 가져가게 하지는 말자.